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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소신발언.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나훈아의 소신발언.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KBS2에서 <2020 한가위 대기획-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콘서트가 지난 달 30일에 방송되었다.이 콘서트는 코로나 19로 인해 무관중으로 진행되었고 29%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달성했다.이번 달 3일에 방송된 스페셜 방송도 18%의 시청율울 기록하면서 나훈아의 저력이 다시 한번 확인할수 있는 콘서트였다.그리고 이런 폭발적인 관심과 함께 나훈아의 소신발언도 큰 주목을 받았는데 오늘은  나훈아의 신념,명예 그리고 가수로서의 프라이드 보여주는 그 동안의 그의 발언과일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나훈아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기자회견(나훈아 벨트) 

 

2008년 야쿠자와 연인관계에 있던 여배우와 치정에 얽혀서 야쿠자가 나훈아의 성기를 잘랐다는 루머가 돌았다.그 때 언급되었언 여배우는 김혜수와 김선아였는데 평소 루머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던 나훈아는 이 루머에 대해서는 아주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나훈아 기자회견 모습 

 

2008년 1월 25일에 그랜드 호텔에서 대규모 생방송 기자회견을 연 것이였는데요.그가 이 루머에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대응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였습니다.

 

 

연예계 후배인 두 여배우 때문이였습니다.그는 기자회견에서 이 루머로 인해 고통받을 후배들 때문에 나왔다고 하였고 이 후배들이 마음이 좀 여린 사람이였다면 자살까지 갈 수 있는 문제이고 기자들 당신들은 펜대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

라고 하면서 내가 바지 지퍼를 내려 5분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다고 하면서 두 후배들에 대해 꼭 바로 잡을 기사를 써주십시오.라고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이 기자회견으로 나훈아는 기괴하고 괴짜로 불리면 조롱을 받았다.

 

아무런 근거없이 루머에 휘말렸다.

나훈아 삼성가 초대거절

 

나훈아의 가수로서의 프라이드,강단 그리고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입니다.김용철 변호사 <삼성을 생각한다.>에 수록되어 알려지게 되었는데 보통 유명가수들은 삼성가에서 불러주면 그것을 영광 또는 자랑거리로 여겨졌습니다. 보통 초대된 가수들은 노래 2~3곡 정도 부르고 약 2000~ 3000만원 정도의 금액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과 가황 나훈아

 

나훈아의 오랜 팬이였던 이건희회장도 자신의 생일에 나훈아를 초정했지만 나훈아는 <자신은 대중예술가이다.나는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을 끊은 사람들 앞에서만 노래한다.내 노래를 듣고 싶은면 표를 끊어라>라며 초대를 거절했다고 합니다.삼성가 초대를 거절한 유일한 가수라고 전해집니다.

 

아이돌로써는 최초로 이건희회장 생일파티에 초대된 씨스타.

 

나훈아 평양공연 불참.

 

1985년 9월 21일 대한민국과 북한이 광복 40주년을 기념하여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처음으로 합의 이행하였고 남북예술단을 교환했는데 그해 9월에 나훈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평양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평양아줌마라는 곡이 탄생하였고 이곡은 실향민들의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평양공원을 거절한 나훈아

 

그 후 노무현정부하에서 평양공연을 제안을 받게 됩니다.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2003년 콘서트에서 나훈아는 거절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저런 간섭을 받아서는 절대 이런 공연을 할수 없다.그래서 서울에서 공연을 한다.>하였고 이후 문재인정부에 와서도 같은 제안을 받게 됩니다.이 때의 거절에 대한 대답으로 <스케줄이 바쁘다>라는 아주 심플한 대답이였습니다.하지만 이미예상된 거절이였습니다.2017년 2월 13일에 김정은의 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VX라는 독극물에 독살을 당한 사건이 있었고 그 후  11년 만에 2017년 9월 나훈아는 콘서트를 열었고 김정남의 사진을 뛰우면서 그 추모곡으로 고향으로 가는 길을 불렀습니다.북한이나 권력자들을 전혀 개의치 않았던 과거의 그와 전혀 달라진 점이 없는 모습이였습니다.

 

독살된 김정남의 어린시절

 

일본의 중심에서 독도를 외치다.

 

1996년 오사카공연에서 있었던 일이였습니다.쾌지나칭칭나네를 합창을 유도하면서 그가 말하길 자기가 말하는대로 따라 불러준다면 밤을 새워서 노래를 부르겠다.그리고 그가 부른 노래는 독도는 우리땅이였습니다.오사카에서 재일교표들과 일본인들은 한국말로 독도는 우리땅을 따라부르게 되었습니다.이러한 그의 기행이 일본 우익과 야쿠자들 귀에도 들어갔고 많은 협박과 위협이 있었다고 합니다.하지만 <쥑일라면 쥑이삐라>며 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훈아의 오사카 공연

그 외의 상남자적인 기질을 보여주는 일들.

72년 6월 지방행사도중 깨진 병을 들고 무대로 난입한 남성과 맞서싸우다 70바늘을 꿰매기도 하였으며 자신의 무대에 서는 무용수들에게 성추행을 하는 조폭들과 맞서다 경찰서에 가기도 하였습니다.여당에서 공천을 주겠다는 연락이 왔을때도 내가 진정 국민들을 위한다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고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그러니 나는 국민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깨진병을 들고 무대에 난입한 남성을 제지하다가 70바늘을 꿰맷다.

 

이처럼 나훈아라는 가수는 대중예술가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소신이나 신념에 따라 움직였습니다.권력자 앞에서 굴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그냥 정말 멋있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