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공습
1941년 12월 7일 아침.일본 해군이 하와이주
오아후 섬에 위치한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목표는 태평양 함대와 이를 호위하는 공군과
해병대였다.이 기습공격으로 12척의 함선은
침몰 또는 피해를 입었고 188대의 비행기가
격추,손상되었다.2400여명의 군인이 사망.
민간인은 6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반면
일본은 피해는 군인이 64명이 사망하였고
비행기 29대가 추락하였고 74기가 손상.
잠수함 5척의 손실을 보는데 그쳤다.
미국의 분노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인들의
분노를 가져오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그 결과 일본은 패망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진주만 공습을
일본이 패망하게 되는 원인으로 보는 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대전에 참여하게 되는
결과를낳게 되었고 이것은
전선의 이중화로 전쟁의
어려움을 증폭 시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유
당시 일본은 중국과 전쟁 중이였는데
영국과 미국이 중국에서 일본이 철수하길
바랬다.그것을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자
철강,석유를 일본으로
수출을 금지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자 일본은 미국의 요구대로 철수를
하지 않고 오히려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미함대를 제거하여 시간을 끌어보려 했으나
미군의 생산력을 너무 얕보았던 것이다.
공습자체는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미국은
불과 1여년만에 진주만에서 입었던
피해를 복구 해렸다.
미국의 오판
사실 이 기습을 막을 기회는 있었다.
적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정도의
대비는 할 수있었다.1941년 1월에는
주일대사 조셉그류가 일본의 진주만
공습계획을 입수하기도 하였으며 일본의
공습이 시작되기 약 한시간 전 미해군
소속의 천톤짜리 순양함워드호가
윌리엄 W 아우터브리지 대위 지휘아래
미확인 2인승 소형잠수정을
격추시키기도 하였다.
이 잠수함은 척후로 보내진
일본소속의 잠수정이였다.
진주만의 첫 포성이였다.
하지만 일련의 이런 신호들은
대필리핀대규모 공습으로
생각하여 미 당국은 신경쓰지 않았다.